“…설마 절 믿지 못하세요?” 이렇게 묻는 순간 지금껏 쌓아올린 것들이 일제히 흔들리는 듯했다. 지수는 비로소 그와 일군 작은 세계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실감했다. 악의와 비방, 의심은 언제든 사랑을 갈라놓을 수 있었다. 해서 지키는 일이 어렵고, 지속하기는 더욱 고된 것이다. 정한은 마치 빗장을 닫아걸듯 두 팔을 가로 끼며 여닫이문 쪽으로 향했다. 바...
다른 곳이었다면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수는 참는 법을 알았다. 오랫동안 갇혀 자란 세월이 키워준 재능 중 하나였다. 허락되지 않은 바를 섣불리 구하지 않는 것. 스스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점이 있다면, 인내하는 만큼 어떤 갈증이 자라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남부는 바로 그 부분을 자극했다. 결국 연극을 딱 한 번만 더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겼다. 애령...
지수는 도무지 매몰차게 굴 수가 없었다. 사태를 대략 파악한 순간 기가 막히기는 했다. 다음 순간 정한에 대한 배신감도 그를 강타했다. 그럼에도 자신을 꽉 붙잡은, 주름지고 앙상한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노부인은 진심으로 감격한 눈빛이었다. 또한 의술을 아는 자로서 눈에 들어오는 부분도 있었다. 마주한 얼굴은 낯빛이 검은데다가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고 있었...
신분의 벽은 뛰어넘기 어려웠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그랬다. 지수도 황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절감하게 됐다. 패국 출신의 노예에서 평민으로 면천되었던 건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건 황제의 뜻만 있으면 가능했다. 몇 해를 산 서북에서는 또 어땠는가. 정한이 군림하는 곳이었기에 그가 곧 법이나 다름 없었다. 대도에 정식으로 귀환하니 사정이 달라졌다. 저...
정월을 맞이하여 황궁에서 가족연회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대도에 사는 모든 황족이 모이는 자리로, 지수도 내관으로부터 황후의 직인이 찍힌 초대장을 받았다. 매끄럽고 차가운 종이에는 정한과 함께 쌍둥이를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 친필로 적혀 있었다. “황후마마의 특별한 은덕이라는 것을 아시지요?” 지수는 예를 취하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공공. 마땅히 준비하여...
“문제는 명분이 없다는 거야. 내가 죄를 짓고 떠났으니, 상쇄할 만한 공을 세워야 해. 헌데 상황이 별로 좋지가 않다.” 이에 지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얼굴에 표가 나고 말았던지, 침상에 걸터앉던 정한이 그를 보고는 말했다. “네 탓이 아니다.”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닐까.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여름 축제가 중단된 건 처음이라고 들었다. 이 일에...
“감히 누구를 모함하는 것이냐?” 정한이 대노하며 추상같이 꾸짖었다. 이에 다른 승려가 죽은 회주의 곁에 있던 것이라며 무언가 그의 발치에 놓았다. 병사가 그것을 주워 성주에게 받들었다. 통행증이었다. 금희가 도둑질당한 그것이 맞았다. 지수는 누군가가 이것을 써서 왕부로 들어오리라고 생각하여 문지기들에게 각별하게 대비 시켰다. 이처럼 저를 옭아매는 데다가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